견시병이 목격한 야마토의 함장 아루가 고사쿠의 마지막 모습

 

함교의 제일 위 대공 지휘소에서 헬멧과 방탄복을 입은 채로 그는 자신의 몸을 나침함(函) (binnacle)에 묶었다. 각종 비밀 문서와 암호 책자를 없애버리는 작업을 지휘한 후 그는 마지막으로 세 번 만세를 외쳤다.

 

함장은 자신과 같이 함정과 운명을 함께 하려고 하는 4명의 수병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어서 탈출을 하라고 그들을 밀어냈다.

 

마지막 수병이 그가 가지고 있던 비스킷 몇 조각을 함장에게 내밀자 함장은 싱긋 웃으며 비스킷을 받아 들었다.

 

하나 , 두 개째의 비스킷이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던 찰나 그는 차오르는 해수에 삼켜지고 말았다.

 

1. 피로 물든 바다

 

함장의 이함 명령이 내려지고 야마토의 승무원들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렇게 이함할 수 있었던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함의 내부에 있던 승무원들은 세차게 밀려들어 오는 해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익사하거나 함에 발생한 화재와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야마토의 부장 노무라 대령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바닷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 깊이 빨려 들어감에 따라 바다는 어둡고 끝 모를 깊이를 가진 청색으로 바뀌어 갔다.

 

그때 갑자기 바다속에서 빨간 섬광이 보였다.

 

훨씬 아래쪽에서 가라앉고 있던 야마토의 나머지 탄약고가 폭발한 것이다. 바닷물이 요란하게 흔들려 그에게 천지가 뒤집어 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으나 그것이 그와 여러 병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바닷물이 세차게 솟아 올랐기 때문에 노무라는 수면에 떠 올랐다.

 

8 척의 구축함 중 2척이 침몰했고 2 척은 엔진이 손상되어 항행불능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구축함 후유즈키에 있던 구축 함대 사령관은 바다에 흩어 져서 표류하는 생존자들을 구조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축함들이 침몰한 야마토와 다른 구축함들의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생존자들이 있는 수역에 들어섰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언제 다시 미군 공격대가 급습할지 몰랐고 구출을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는 구축함들은 미 잠수함대에게는 좋은 먹이감이 될터였다.

 

시간이 부족했다 !

 

더구나 다가오는 구축함들이 어떤 생존자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더욱 많은 생존자들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가기 위해 지나치는 구축함의 주변에 있던 자들은 함정의 프로펠러에 말려들어 사지가 토막이 났다. 한번 멀어진 구축함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소수의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일일이 멈춰설 수 없었다.

 

자신을 지나쳐 버린 구축함들을 생존자들은 절망적인 눈으로 쳐다볼 수 밖에는 없었다.

 

 

 

 

"바다에서 구조된 승무원들로 구명보트는 곧 초만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구조를 바라고 보트 주변으로 헤엄쳐오는 자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가능한 많은 수를 구조하고 싶었지만 구명보트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이미 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들이 뱃전을 붙들고 배에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그들의 힘은 거세었고 보트는 점점 기울어 졌다.

 

바로 이 순간에 구명보트의 정장과 부사관들이 그들이 들고 있던 일본도를 빼들었고 뱃전을 잡고 있던 손들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올라타려는 자들을 발로 걷어 차서 바다에 빠뜨려 버렸다."


- 구축함 하츠시모호에 의해 구조된 어느 장교의 회고

 

배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우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던 그들은 칼을 휘두르던 그들을 바라보던 그 절망적인 눈과 얼굴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전우에 의해 손목이 잘려진 채 바다속으로 사라져 가야했던 그 얼굴들을.

 

"나는 의무실에 도착했다. 부상병들의 피를 뒤집어 쓴채 2명의 군의관이 결연한 표정으로 수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선박의 목욕탕을 응급 의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시에 나오는 피를 배수구로 흘려보낼수 있었다. 배수구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피에 잠겨버렸으리라.

 

의무실의 한쪽에는 시신들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내 바로 앞의 환자는 기관포탄에 의해 발목이 잘려버린 어린 수병이었다.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이었는데 그들은 마취제가 없었다.

 

수병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 앞에서 수술용 칼 (SCALPEL) 이 다리를 절단했다. 순간 그의 비명이 그쳐버렸다. 숨을 거둔 것이었다.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었을까 ? 하지만 두 군의관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병의 머리와 다리를 잡아서 몇 번 흔든 뒤 그 수병의 시체를 옆의 시체 더미로 던져버렸다."

 

- 요시다 미츠루 소위의 회고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던 일본제국 연합함대는 이렇게 괴멸했다.

그들이 세계에 자랑하던 일본 무사도도 함께 무너져 버렸다.

 

살아남으려는 본능 앞에서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았다.

 

2. 귀 항

 

야마토의 침몰 2 시간후 연합 함대 사령부로 부터 긴급 명령이 내려왔다.

 

"공격을 취소한다. 생존자들을 구조하여 사세보 항으로 향하라"

 

항행 불능이 된 구축함 2척 (가스미 와 이소가제호)은 승무원들을 옮겨 태운뒤 동료함에 의해 자침되었다.

 

작전에 투입된 10 척중 6척이 침몰했다. 남은 4척의 구축함들은 서둘러 사세보항으로 향했다.

 

1945년 4월 8일

 

부상자들을 사세보 항내의 격리된 섬에서 치료하도록 내려놓고 나머지 생존자들 (경상자 포함)은 구레(kure) 항 으로 향했다.

 

구레 해군 기지에서 승무원은 그들 앞으로 온 산더미 같은 편지들을 발견했다.

 

모두 승무원들의 가족들이 보내온 것들이었다. 하지만 편지의 대부분은 그 주인을 잃어버렸다.

 

수신인이 사망한 편지를 찾아내 분류하여 발신인에게 돌려보내는 일을 해야하는 승무원들의 마음은 쓰라렸다.

 

도착한 구레항에서 침몰한 함정의 승무원들은 새로운 배치를 기다렸다.

 

야마토의 부장 노무라 대령은 야마토의 승무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살아 남았다. 우리는 죽기에 더 나은 곳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의가 없다면 우리 승무원들 모두 특공 임무에 자원한다 !"

 

야마토 출격의 배경이 되었던 텐고 작전이 끝이 난 후 연합함대 참모장은 다음과 같은 전문을 해군 전 부대에 하달했다.

 

"1945년 초반 우리의 해군특공부대들은 오키나와 해역의 적 침공부대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 작전은 우리 제국해군과 수상함대의 영광을 한층 드높였다. 용감한 장병들과 제 2 기동부대의 사령관 ( 이토 세이이치 중장) 이 황국을 방어하는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의 황국을 지키려는 충성스런 마음은 우리를 감격시켰으며 그들의 충정은 수대에 걸쳐 빛날것이다.

 

이에 본인은 그들의 고귀한 행동을 전 해군에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지옥과 같은 바다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자들에게 이런 무의미한 말 한마디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

 

# 미 58 기동부대 VS 일본 제 2 기동부대

 

일본 해군 피해상황 : 전함 1, 순양함 1, 구축함 4척 침몰

 

사망자 : 약 4,000명 (야마토 호의 승무원 2,747명)

 

[she took 2,747 men with her, all but 269 of her crew. Surrounding Japanese ships lost an additional 1,167 men.]

 

미 해군 피해상황 : 전투기 3, 폭격기 4, 뇌격기 3

 

사망자 : 12명

 

에 필 로 그

 

 

 

 

[1] 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소에무 제독

 

히요시의 지하 벙커에서 수많은 부하 장병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도요다 소에무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최고전쟁회의의 요인으로서 그는 2차례의 원폭투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어느 전쟁에나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와 안전하게 살아남는 자는 따로 있는 듯하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도 12년이나 더 살다가 1957년에 사망했다.

 

 

 

 

 

 

[2] 1985년 수중 탐사에 의해 야마토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야마토의 함수에 붙어있던 일본 황실의 상징 : 마치 일본제국주의의 망령을 보는 듯하다. 저 헛된 상징을 위해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

 

 

 

 

[3] 야마토의 생존자 요시다 미츠루 소위

 

그는 이 전쟁에서 살아 남았다.

 

야마토의 함교에서 작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목격했던 그는 1950년대 "전함 야마토의 최후"라는 회고록을 출판했고 일본 사회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전쟁 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 재학중이었던 그는 전쟁이 끝난뒤 일본 은행 (bank of japan) 에서 근무 하면서 글과 강연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다하다 1979년에 사망했다.

 

 

 

 

[4] 야마토의 출격 명령이 떨어지고 예정된 자살과도 같은 이번 임무의 성격을 알게 된 초급 장교들은 병약해서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수병, 부양 가족이 많은 3, 40대의 노병들을 각 부서에서 조사해서 그들을 이번 임무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함의 지휘부에 제출했다.

 

그들의 의견은 받아 들여져서 출항 직전에 그들은 함을 떠날 수 있었다.

 

결국 힘없는 많은 수병들의 목숨을 헛된 죽음으로 부터 구한 것은 천황도 해군 군령부도 야마토가 자랑하던 거대한 포탄도 아닌 "인간에 대한 배려"였다.

 

 

 

Posted by geh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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