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야마토를 아십니까?

 

2차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대, 최고 성능의 전함으로 연합국을 긴장시켰던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는 전쟁 초기에  태평양을 제패 했던 일본연합함대의 상징이었습니다.

 

한때 자매함 (sister ship) 무사시 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거함대포주의 (巨艦大砲主義) 의 대표 주자로 큰 기대를 모았던 야마토는 전쟁 말기 너무나 허망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 하고 말았습니다.

 

소위 욱일승천의 기세로 전 아시아를 지배 하고자 했던 일본의 야욕과 함께 탄생하여 결국 일본제국주의의 종말을 예언이라도 하듯 태평양의 심연으로 침몰하고만 전함 야마토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시험 항해중의 야마토 : 이때만 해도 나날이 승승장구하는 일본해군의 상징으로 또한 거함대포주의의 선두주자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1. 저물어가는 태양

 

전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다. 한때 태평양을 움켜 쥐었던 일본의 연합함대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한때 침체되었던 미 태평양 함대는 서서히 그 가공할 힘을 보여주고 있었고 연합 함대는 분전했지만 미드웨이의 패배를 극복하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결과 :  미 태평양 함대를 압도적인 전력으로 전멸시키고자 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야심찬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결국 미 해군은 진주만의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고 일본 연합함대의 행운의 별은 빛을 잃어갔다.

 

전쟁 후 1,2 년은 크게 떨치리라는 야마모토 제독의 근심어린 예측이 그대로 맞아들어 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야마모토 제독 마저도 1943년 4월 18일 부갱빌 상공에서 미군기의 요격에 의해 격추 되어 사망하고 만다. 일본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손실이자 미국으로써는 미드웨이 해전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였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한때 미국 주재 해군 무관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 했던 그는 국력의 차이를 들며 처음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처음에는 무모한 전쟁을 피해 보려했던 의식있는 (?!) 군인으로 군신으로 미화되기도 했으나 후세 그의 지휘를 받았던 하급 지휘관과 병사들은 그런 미화에 대해서 냉소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더군다나 전후 전쟁 책임을 육군 지도부에 떠넘기기 위해서 해군이 그의 실체를 윤색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때 일본군의 아성이었던 남 태평양은 이제 일본군들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의 해군 항공전력도 숙련된 조종사들의 늘어나는 전사로 인해  그 빛을 잃고 있었다. 해군 최고의 ACE로 손꼽히던 사카이 사부로도 한쪽 눈을 잃고 본국으로 귀환되고 만다. 일찍이 너무나 엄격한 기준으로 조종사들을 양성했던 일본 해군은 이제 심각한 조종사 기근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일본 해군의 ACE 들 : 사카이 사부로 (上) 와 "라바울의 악마" 니시자와 히로요시 (下)

 

사카이 사부로는 "라바울의 악마" 니시자와 히로요시와 함께 일본 해군항공의 전설적인 존재였다.

 

30년대말 중국전선에서 부터 태평양전쟁 개전시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 기습, 남태평양 상공까지 그는 일본해군의 예리한 칼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그와 그의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처참한 죽음과 패배였다.

 

더구나 태평양의 공포로 불리우던 ZERO전투기도 미국의 신예 HELLCAT과 충분한 훈련을 받고 전선에 투입된 미군 조종사들을 상대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F6F HELLCAT : F4F WILDCAT의 후계기로 태평양전쟁 당시 미해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미군특유의 두터운 장갑으로 인해 왠만한 피탄에는 문제없이 귀환이 가능했고 조종사의 생존률도 높았다. 더구나 .50 구경 기관총 6문을 장착한 HELLCAT은 일본 조종사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전후 50년이 지났지만 기관총을 발사하며 자신을 추격하는 HELLCAT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난다는 이야기에서는 지난날의 기억이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 준다. - 태평양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나온 전직 일본 해군 조종사의 인터뷰 중에서)

 

계속되는 패배를 만회해 보고자 거의 모든  전력을 다 동원 하다시피하여 승부를 걸었지만 (레이테만 해전) 결과는 참담 했다.  더구나 정상적인 항공 작전이 어려워지자 이때부터 가미가제 특공대를 이용한 전술이 정식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기대를 모았던 거함 무사시와 야마토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무사시는 결국 시부얀해 해전에서 격침되고 말았다.

 

 

 

한때 일본 연합함대의 총아 였던 야마토였으나 레이테 만 전투때는 미국 항모부대를 추적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한 끝에 결국 전선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항모 츠이가쿠의 최후 : 대다수의 승무원이 함과 운명을 같이 했다.

 


* 레이테만 해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의 피해상황비교

 

- 미 해군 : 고속항공모함 1, 호위 항모 2 , 구축함 2, 호위 구축함 1 / 병력 손실 : 3000명

 

- 일본 해군 : 항모  4, 전함 3, 중 순양함 6, 경 순양함 4, 구축함 9  / 병력 손실 : 10,000명   


 

Posted by geh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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