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압도적인 강자에 대항하는 약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 : 잔인함

 

(1) 제 5 특전단 (그린 베레) 소속의 초임 장교로 작전 지역내의 작은 마을을 드나 들며 대민 지원과 함께 적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베트콩의 접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 된 소위가 있었습니다.


베트콩을 겁내며 미군의 접근을 꺼리고 비협조적인 다른 마을의 촌장들과 달리 이 마을의 젊은 촌장이 많은 도움을 주자 이에 고마움을 느낀 소위는 인간적인 친교와 더불어 마을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 어귀에 들어선 그들의 소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임산부인 촌장의 부인이 배가 갈라진 채 로 거꾸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참혹한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2) 미군들에 의해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못했던 평균적인 남 베트남군 장교 와는 달리 강직하고 청렴한 젊은 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군들도 그가 많은 회유와 협박을 받는 다는 것을 알고 이 사람을 다른 부대로 전속 시킬까 고민도 했지만 그가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그 만큼 업무를 잘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계속 근무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차례에 걸친 회유와 협박이 모두 실패한 베트콩들은 500 km나 떨어진 초급 장교의 노모가 살고 계신 그 장교의 시골 고향으로 찾아가 노모를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2. 약자라도 누군가에게는 폭압적인 강자가 된다


(1) 중국, 프랑스, 미국으로 이어지는 초강국과의 싸움을 수년 동안 계속해온 것에서 알수 있듯이 베트남인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또 그 만큼 배타적이기도 했는데요. 베트남내 중부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고산 부족들 (몽타냐르) 을 베트남인들은 멸시하고 핍박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는 모토로 그들 소수민족들에게 접근하는 집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미군 특수부대원들.


"그 당시의 우리들은 총을 든 문화 인류학자 같았다" 라고 회고하듯 미군들은 소수 민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의약품과 식품을 들고 가서 그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우호의 제스추어로 고산부족들의 민속주도 마시고 전통 의상을 입고 의형제 의식을 치르기도 하는 등 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는데요. (이런 말을 하는 다큐멘터리속의 미군도 미국 남부사람이니 뭔가 통하는게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봄.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미군들 중에는 중서부 사람들 (MID-WEST) 이나 남부 출신들 (장교들) 이 많았습니다.)


베트남인들의 냉대에 시달리다 미군들의 관심과 지원을 접하고 마음을 연 고산 부족들은 미군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미군이 지급한 무기로 무장하여 지역 방위대를 창설하기도 하고 추락한 미군 비행사 구출에 나서기도 하고 마침내 미군의 비밀 특수부대에 가담하기도 합니다.

 

(2) 미군을 놀라게 한 일화들 몇 개

 

고산 부족의 전통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한 미군이 자신의 소지품과 군복을 마을의 광장에 두고 온 것을 뒤늦게 기억하고 뒤늦게 달려가 보니 귀중품이 그대로 인채로 놓여 있었고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남의 물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부대 내, 외에서 남 베트남인들의 거짓말과 적개심에 익숙해져 있던 미군들은 고산부족의 정직함에 새삼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위의 진술도 미군의 주관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겠지만 뭐, 남 베트남인들이 원래 인간성이 나빴겠습니까 워낙 전란과 외세에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되었겠지요.)


왜소한 체구 이지만 평소 전투에서 보여준 침착함과 남다른 용기로 미군 동료들의 존경을 받던 병사가 식당으로 들어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은 소수민족 병사를 망치로 머리를 난타하여 죽이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미군들이 도대체 왜 그랬냐고 물어보자


"이 자가 내 약혼녀에게 무례한 말을 하며 희롱했다. 나는 그런 모욕을 참을 수 없다" 고 답했다고 합니다.

 

(3) 미군의 특수부대에는 남 베트남인, 베트남내 소수 민족등 베트남 사회의 하층에서 많은 핍박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다수 가담하였습니다. 따라서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에 대한 이들의 원한은 미군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였는데요


어느 정찰 작전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베트콩을 생포하여 철수를 서두르던 시점에 베트콩 포로와 소수민족 대원간에 말 다툼이 벌어지자 미군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포로를 끌고 간 소수민족대원들은 포로를 맨손과 총으로 때려서 죽여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특수부대에 전입해온 장교는 방금 벌어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부하인 고참 부사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고 묻자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냥 모른 척 하세요" 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고 합니다.

 

 

 

 

IN HARM'S WAY : 마치 자신의 영정사진을 남기듯 임무에 나가기 전과 후에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했다.

 

정규군과 달리 고도의 자율성이 특징인 특전 부대 : MACV-SOG에서는 심지어 계급 조차도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아서 자신들이 부여받은 임무 달성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팀 리더 (1-0) 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예를 들자면 경험이 많은 하사가 초임 소위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전체적인 지휘-통제를 하기도 하는 식) 정규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파격"이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뭘" 해야 할지만 알려 달라 "어떻게" 하라는 말은 하지 말고


북 베트남군은 이들의 존재를 아주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들을 분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SOG 1개팀 10명 내외를 잡기위해 정규 북 베트남군 1개 연대를 동원하기도 (HUNTER - KILLER GROUP) 했다.


백악관과 펜타곤의 직속부대로서 국경을 넘나든 비밀 전쟁을 벌인 대가는 참혹했다.

 

이들의 활동 자체가 불법 (라오스, 캄보디아 무단월경) 이므로 전쟁 포로가 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대원들이 아직도 MIA [임무 수행 중 실종] 상태.


문자 그대로 증발해 버린 사람들이 많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1982년에서야 군사 전문지에 이들에 대한 기사가 소개 되었다.

 

 

 

 

 
이런 홍안의 청년들이

 

 

 

 


1990년대 말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받게 된 국가의 공식적인 인정.

 

 

 

판문점에서 북한군 대표와 마주 앉은 노병 :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일본군 / 한국전쟁 당시 북한, 중국군 / 베트남전쟁 당시 북 베트남군과 싸웠던 역전의 노장에게도 회담 석상의 북한군은 만만치 않은 상대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공약 이행 주장에 대한 반발로 목이 날아간 "깡다구 넘치는" 전 주한미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 소장이 바로 베트남 전 당시 MACV-SOG 의 지휘관 출신.

 


Posted by geh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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