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ER PILOT

일 반 2015. 5. 19. 21:37

 

 

 

 

 

전투 조종사가 되는 것은 오토바이 갱단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갱단 가입과 전투 조종사가 되는 것의 차이점은

우리 엄마가 아직도 나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 어느 전투 조종사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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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때 중부전선 도솔산전투라는게 있었어. 인민군이 쎄서 우리 육군이 혼난 곳이지.

육군이 당해내지 못해 우리 해병이 교체해 올라갔다지. 해병 하사관들이 죽음의 고지로 올라가며 악이 받쳐 육군장교들의 조인트를 깠다는 거야. 병신 새끼들이라고. 당연히 우리 귀신잡는 해병은 인민군을 궤멸시켰지. 그때의 육군장교들이 요증 국방 지휘부라는 거야. 그들이 아니꼬운 해병을 쳐버린 게지"

- 김재규 정부부의 궁정동 의전과장이었던 예비역 해병대령 박선호. 1973년 10월 10일 해병대 해체 (외형은 해군에의 통합) 에 분격하며.

 

 

10·26 당시 중정 의전과장 박선호는 영화처럼 건들거리고 빈정대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의 이력과 군사재판에서의 답변 태도, 최후진술 등이 그 근거다. 그는 예비역 해병대 대령 출신으로 해병대학에서 수석 졸업할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해병 간부후보 동기생 중 진급이 가장 빨랐던 만큼 성실하고 충직했다.

 

 

대통령의 비밀 연회장에서 술과 여자 조달을 맡아 그는 ‘채홍사’로 불렸다. 법정 진술에서 그는 매우 고민했으나 조직과 상관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 일을 계속했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더 이상 안 하려고 사표를 냈으나 부장님이 자꾸 자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 원문링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7373

 

사랑과 연민, 신뢰와 존경

 

 

김재규의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역시 눈물겹고 거룩하기까지 하다.

 

 

“이번 혁명의 실제 주역은 명령을 하고 주도한 오직 한 사람, 바로 본인입니다. 일본에서도 5. 15사건이나, 2. 26사건이 있었을 때, 근위사단병력이 내각의 대신을 쏴 죽인 사건으로, 이 경우에도 주모자인 장교에게만 책임을 묻고, 그 외 하사관과 병졸은 무죄가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명령이 결코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됩니다. 정보부는 군대 이상의 임무와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박선호, 박흥주 두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할 여유를 주지 않고,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특수 조직의 생리를 감안하여 각별히 정상을 참작해주기 바랍니다.”(1심, 7차 공판진술)

 

 

“나의 부하들은 착하고 양같이 순한 사람들입니다.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철두철미하게 복종했으며, 또 나는 그들에게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죄를 지었고, 저의 입장에서는 혁명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모든 원천이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저에게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극형만을 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이라 가슴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매우 모범적이고 결백했던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관학교에 지망했던, 지금 선두로 올라오는 대령입니다.” (1심, 최후진술)

 

 

“나는 10. 26혁명의 처음이요, 끝이요 전부입니다. 오직 나의 책임인 것입니다. 재판부 여러분께서는 이 사건의 성격 자체와 역사적 관점에서 심판해 주십시오. 아무쪼록 법률조항에 매달리지 마시고, 내 부하와 불쌍한 가족들을 각별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2심, 최후진술)

 

 

그 상관에 그 부하라고 할까. 박선호 역시 그의 부하들을 이렇게 변호한다.

 

“여기에 제 부하였던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유석술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무 뜻도 모르고 나왔고, 제가 지시한 대로 내용도 모르고 따라 하다가 이 법정에 서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아무쪼록 이 부하들에 대해서만은 관대하게 처리해 주실 것을 말씀드립니다. (2심, 최후진술)

 

 

이들은 항소심 선고가 끝나던 날 (1980년 1월 28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가 헤어졌다. 선고가 끝나자 김재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선호 등 5명의 부하들과 일일이 생전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악수를 나누었다.

 

 

김재규는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두들 건강해라”라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떠났다. 또한 그가 죽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3일, 그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긴다.

 

 

“나는 내 동지, 나를 포함해서 7명이 됩니다만, 이 동지들은 나와 이념을 같이하고, 이 혁명에 가담했던 나의 동지들입니다. 이 동지들은 지금도 자기의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이상으로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김태원이라고 하는 동지는 와전옥쇄라, 기왓장으로 온전한 것보다는 옥이 되어서 차라리 깨지겠다고 하니, 얼마나 숭고한 이야기 입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지들, 참 귀중하고, 참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의 부하들입니다.”

 

 

5월 24일, 새벽 7시, 그는 사형을 집행 당하면서 “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갑니다. 나의 부하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하들이 죽게 되면 언젠가는 함께 묻어 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결국 이들 경비원들조차 내란주요임무 종사자로 몰려 전두환 군부에 의해 서둘러 처형되었다.

 

 

지금 김재규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 박선호는 고양, 박흥주는 포천, 이기주는 양주에 있다. 언젠가는 과연 김재규의 소원대로 그들이 함께 묻힐 수 있을까 ? 금년 5월 24일도 이미 지나갔다.

 

 

김정남 / <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지냈다. 쓴 책으로 『진실, 광장에 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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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상적, 정치적 사악함과는 별개로 프로파간다의 귀재 요제프 괴벨스 박사의 선전, 선동 기법은 참으로 놀랄 만한 것이 었습니다. (그 당시 군 기관지의 레이 아웃등은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

독일군 기관지등을 통해 육, 해, 공군의 수많은 장병들이 독일 국내에서 스타 아닌 스타 (?!)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중 몇 명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공군 -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 / BF-109 조종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일로 이주한 프랑스 위그노 교도의 후손이고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후일의 에이스가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어려서 부터 비행기에 관심을 보였고 부모의 이혼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절도 있고 팀 웍에 투철한 독일 공군 조종사를 상상하면 오산. 밤이면 밤마다 나이트 클럽에서 미인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빤 베를린 스타일 ^^) 적성국의 "불온" 음악인 재즈를 즐겨들으며 위험천만한 비행을 일삼자 그는 비행단의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합니다.

 

 

 

 


마르세이유의 애기이자 아프리카 전선에서 롬멜 만큼이나 유명했다는 "Gelbe 14번 기"

 


(사막의) "여우"와 "별"의 만남 : 진짜 롬멜을 만나는 장면

하지만 북 아프리카 전선으로 배속된 그는 기본이 안 된 조종사라는 오명을 씻고 일약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의 슈퍼 에이스로 거듭남과 동시에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만큼이나 유명한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해군 - 요아힘 쉬프케 / U-BOAT 함장

BBC의 2차대전 다큐멘터리를 보면 대서양 해전에서 연합군 호송 선단을 상대로 엄청난 전공을 올려 영웅으로 떠오른 요아힘 쉬프케와 그의 부하들을 독일 해군과 선전당국이 이들을 바바리아 알프스 시골 마을의 소박한 가정에 초청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더군요. 군-민 협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어린 아이들 처럼 즐거워 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비정한 전쟁의 실상을 교묘히 감추는 그 치밀함에 등골이 오싹해 지기도 ...........

SS 요아힘 파이퍼

 

 

남자가 봐도, 적군이 봐도 잘 생긴 .......... : 그 유명한 아르덴 숲에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미군 병사가 후일 재판에서 "얼굴이 잘 생기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SS 장교" 라고 특정한 바로 그 남자. 독일군 최연소 연대장 요아힘 파이퍼.

 

-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  : 파이퍼가 은거하던 프랑스의 시골 마을로 통하는 도로에 적혀진 페인트 낙서. 이 낙서가 발견된지 몇일 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의 습격으로 그가 살던 집은 전소되고 파이퍼는 시체로 발견됩니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잘 쓰던 전술이 바로 러시아 농가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것이었으니...........)  

SS 막스 뷘쉐

 

 

보 론

독일군 특히 SS에는 허우대가 멀쩡한 미남들이 많았는데요

이는 인종주의 우생학의 신봉자 하인리히 히믈러가 "용모단정한 (^^) 청년들" [어째 다방 여종업원 모집 공고를 연상시키는] 을 위주로 선발했기 때문입니다. (최하 신장 172cm , 충치가 있어도 아니되오, 가계도에 비독일인이 섞여도 아니되오 등등)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그렇지 않아도 SS를 못마땅해 하던 독일 육군 정통파들에 의해

(아래의 만슈타인 같은.....)

 

 

저런 근본없는 놈들을 봤나 .......

 

 

(上) 흥 ! 유서깊은 독일 국방군 (정규군) 따위 ! / (下) 다시 만난 어제의 용사 (전범) 들. 전후 독일의 SS 상호부조협회의 회합 사진

"아스팔트 군대" (시가에서 민간인들에게나 멋지게 보일 사열, 가두 행진에나 써 먹으면 그만일 뿐 군대로서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 로 불리거나 [실제로 SS의 대부격인 제프 디트리히는 전쟁 (1차대전) 전 젊은 시절 속된 말로 거리에서 굴러먹던 (aka 거칠게 살아온) 깡패 출신 : "거리에서 굴러 먹던" 하는 표현을 쓰고나니 MBC 공채 출신 박명수씨가 노홍철씨에게 한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 ]

독일 주재 타국 외교관들 (무관들) 에 의해 "금발의 멍청이들" (대사관의 파티등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담소를 나누는데 이 허우대 멀쩡한 SS들은 외국어를 잘 못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뚱하니 서 있기만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 로 불렸다니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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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꼼수의 달인 이명박 같은 짓을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7406348


CAS (CLOSE AIR SUPPORT : 근접항공지원) 계의 최고봉 이자 위기에 처한 보병들의 수호 천사


지상의 대공 포화에 피격되었지만 손상된 기체를 몰고 무사히 기지로 귀환한 A-10 조종사의 모습

"위험하지 않느냐 ?" 는 물음에 대한 어느 A-10 조종사의 대답

"Those are the risks you are going to take to help the guys on the ground. That's our job. That's what we do. Our guys were taking fire and you want to do everything you can to help them out."

지상의 아군을 돕기 위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위험들이다. 그게 바로 우리의 직업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다. 우리의 보병들이 총격을 받을 때면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 Kim Nichole Reed-Campbell


 

 

A-10 조종사들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찬사 :

 "If it hadn't been for you guys I wouldn't still be here." (너희 A-10 조종사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 그들의 근접 항공지원을 받았던 육군 보병들이 투박한 진심을 담아 손으로 써서 전한 한 마디

 

- 관련기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291531031&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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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들의 지원을 받는) 보병들의 감사야 말로 어떠한 훈장 수여나 표창보다도 포병들에게 값진 것이다  


    - 게오르크 브루크뮐러 대령. 독일 제국 포병 장교 (현대 화력 지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미군 포병의 속도, 정확성 그리고 무서운 파괴력은 그들의 지원을 받는 연합군 육군 장병들에게 서는 (포병에 대한) 신임과 존경을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선 적군에게는 공포와 외경심을 자아내게 했다

                                                      - 유럽전선 연합군 총사령관 Dwight D. Eisenhower


포병들이 자신들의 포에 대해 갖는 애정은 여느 다른 병사들이 자신들의 병기에 대해 갖는 감정 보다 훨씬 강렬하다 

                                                                                         - 준장 S. L. A. Marshall

전투가 격렬할 수록 전쟁이 장기화 될 수록 보병들은 아니 모든 병과가 포병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 원수  Montgomery


 

 

최고의 장군들은 포병 병과에서 복무했던 장군들이다

신은 최고의 포병을 갖고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싸운다


                                   - "깔때기 최고" (*^^*) 역시 포병 출신 Napoleon Bonaparte 각하


"독일군들이 우리가 가진 모든 무기 중에서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바로 우리군의 포병 전력이었다."


                                                                - 종군기자 Ernie Pyle "Brave Men", 1944

만일 전투가 끝난 후 아군 보병들이 너를 싫어 하게 된다면 너는 형편없는 포병이다

                                      
                          - 대위 Henry Reilly The Field Artillery Journal, September-October 1940


 

 

                                         Artillery is the god of war. 포병은 전쟁의 신이다

                
                                                                 - 스탈린 -

 

2차대전 유럽 동부 전선

독소간의 대격전인 kursk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도 바로 소련군 포병 화력의 "무지막지한" 일제 사격 이었고 승기를 잡은 소련이 독일 본토로 진격해가며 독일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베를린을 완전히 폐허로 만드는 데도 일익을 담당했음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끝나고 폐허로 변한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이 포로 수용소로 향하는 독일군 포로들을 향해 한 "언젠가 베를린도 스탈린그라드처럼 되고 말 것이라는 예언 같은 말이 현실이 되고 말았음)

2차대전 태평양 전선 : 인종적 편견과 당혹감

펠렐류, 오키나와, 이오지마에서 일본 육군의 정확한 포 사격에 직면한 해병대 장병들 사이에 퍼진 소문

"쪽발이들 (Japs) 이 이렇게 정확하게 포를 다룰 리가 없어. 독일군 포병이 와 있는것 아닐까"

베트남 전

남베트남의 최북단 이자 마치 우리의 38선 같은 베트남의 17도선 DMZ를 경계로 벌어진 북베트남 정규군과 미군들의 치열한 전투에서도 미군에 비해 우세한 사정 거리의 소련제 중포들이 활약했음

압도적인 미 공군의 항공 전력을 무력화 하는 유리한 지형과 신기에 가까운 축성술을 통해 구축한 갱도 진지에 숨겨놓은 중포들이 한국 전쟁당시의 고지전을 연상시키는 1967년의 "HILL FIGHT", 68년의 케산 포위전에서 미군에 막대한 피해를 끼침 

 

 

 

포격의 무서움과 가공할 위력을 잘 보여주는 위에서 말한 HILL FIGHTS의 현장.

사진가 래리 버로우즈의 "REACHING OUT"

 

미 해병대가 주둔한 케산 기지의 탄약고가 북 베트남 포병의 직격탄에 맞아 폭발하는 순간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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