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nce upon a time in ~


지금으로 부터 어언 10여년전 아직 팔팔하던 시절 국가의 부름을 받아 동원 훈련을 갔었습니다.


대학도 졸업 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군복을 입고 포병 주특기의 이른바 "선수들" 끼리 모이니 얼마 되지 않아 "군인" 으로 빙의가 되서 옛날에 놀던 가락이 나오더군요

 

[멀쩡하던 사람도 군복만 입으면 "도그"가 된다나 뭐래나 ~ *^^*]


쭈뼛쭈뼛 하던 것도 잠시 금새 친해져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참가한 예비군 아저씨들 대개가 다 3군 사령부 예하 부대 전방 야전 포병 예비역들이 다수를 차지 한 관계로 현역 시절 노가리를 풀기 시작하니 끝이 없는 이야기들이 나오던 도중

 

학사 출신 대위분이 이야기 해 주신 "괴담 급 이야기" 가 하나 있었으니 다음과 같습니다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건​​​​

 

 

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C%B2%9C_%EC%98%88%EB%B9%84%EA%B5%B0_%ED%9B%88%EB%A0%A8%EC%9E%A5_%ED%8F%AD%EB%B0%9C_%EC%82%AC%EA%B1%B4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6289_19418.html

 

 

"뼈도 못 추린다" 라는 말이 있지요 ?


훈련장 사고의 현장이 바로 그런 참상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사지가 완전 분해 되어 나뒹구는 현장에서 군인들이 얼기 설기 시체들의 잔해로 팔, 다리를 이어 붙여 사람 형상을 만들 (!?) 어 가며 피해 인원을 점검하던 도중


죽었던 사람이 부활한 "기적" 아닌 "기적" 이 일어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기적의 주인공은 바로 그날 교육 훈련을 위해 이동하는 도중 대열을 이탈하여 인근 산 수풀 속에서 숨어서 [기도비닉] (전문 용어로 짱 박힌다 고 하지요) 피곤한 심신을 숙면으로 달래던 예비군 X 씨

 

곤한 잠을 자던 X씨는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연기에 놀라 잠을 깨고 산 아래로 내려와 보니

엄청난 참상을 목격하게 되고 : 1차 멘붕

 

더구나 멀쩡히 살아 있는 자신이 사망자로 분류 되었다는 데서 : 2차 멘붕

   

죽다가 살아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경탄을 샀다는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

 

하여간 구사일생, 새옹지마 의 교훈을 떠올렸고

 

"농땡이"가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에 더 가열차게 훈련에 임해 동원사단 조교 아저씨들을 괴롭혔던 생각이 납니다. *^^*

 

하여간 군대가 쉽게 갔다 쉽게 오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순간 순간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곳이고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그래도 사지육신 멀쩡하게 온전한 정신으로 제대한 예비역 특히 포병 예비역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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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유럽을 둘러싼 요새를 만들었으나, 지붕 덮는 것을 잊었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1943년

 


#  연합군의 주,야간 공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독일 쾰른


한때 전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독일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1. 절  망 

 

 

 

 

#  아돌프 갈란드 중장

 

스페인 내전 (콘도르 군단소속)과 영국 항공전(BATTLE OF BRITAIN)에 참가 했던 역전의 용사.

독일군내 최연소 장군이 될 정도로 고속승진을 했지만 전쟁의 시작과 끝을 전투 조종사로서 마쳤다.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예의범절과 따뜻한 인간미를 갖추고 사라져 버린 기사도를 피비린내 나는

 

하늘의 전장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부하들뿐만이 아니라 그의 적들로 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1944년 4월, 어두운 표정의 아돌프 갈란드는 독일 공군 수뇌부 내의 그의 상관(헤르만 괴링)앞으로 절망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다. “우리독일 공군의 붕괴가 마침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라고 그는 쓰고 있었다.

 

갈란드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단지 항공기 보급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조종사부족 때문이었다. 사실 놀랍게도 독일은 일찍이 볼 수 없었을 만큼 대량의 비행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2월의 연합군 대 공습뒤에 긴급계획이 실행에 옮겨져 공장을 소개하거나 재건하고 또  근로자들에게 주 72시간의 근무시간을 부과한 결과 어떤 공군장교의 말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비행기의 바다 속에 빠질 듯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비행기가 있다고 한들 비행기란 이를 조종할  조종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 유럽 본토의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미 제 8공군 B-17 중폭격기의 위용.


아직 연합군의 유럽 본토 상륙이 시작되기 전 독일과의 전투는 지상보다는 하늘에서 벌어졌다.


압도적인 공군력을 보유한 연합국의 공세가 연일 계속되었지만  여기에 대항하는 독일 공군도 만만치는 않았다.

 

1943년 미국이 주간정밀폭격에 나선 이래로 미 제 8공군과 독일공군은 평온하게만 보이는 유럽의 하늘을 피로 물들이며 사투를 벌이게 된다.
 
갈란드의 보고서는 과거 4개월 동안의 독일공군의 손실로 주간 전투기 약 1000대의 물적 손실뿐만이 아니라 독일공군의 최우수 조종사들중에서도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을 특히 언급하고 있었다.

 

3월 2일 미군의 P-47 (Thunderbolt)에게 격추당한 정예 리히토벤 전투비행단 (Jagdgeschwader 2 - JG 2 Richthofen) 의 지휘관인 26살의  에곤 마이어 중령도 그러한 희생자중의 한 명이었다.

 

마이어는 1939년 12월이래 공중전에 참가하여 미국의 대형 4발폭격기에 대한 전설적인 정면공격작전을 감행한 인물이었다. 4년 이상에 걸친 실전 속에서 그는 미국과 영국의 폭격기 26대를 포함한 102대를 격추했다.

 

 

 

 

# 4발 대형 폭격기 킬러 : JG2의 지휘관 에곤 마이어 중령. 서부전선의 에이스 중의 한 명이다.
 

이러한 뛰어난 조종사는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갈란드는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훈련을 끝낸 조종사조차도 그 숫자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독일공군 비행학교에는 수 많은 난제가 쌓여있었다.

 

그곳에는 유능한 교관이 부족했다.

 

그 이유는 가장 뛰어난 비행사는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어서 현역복무가 불가능해 질 때 까지 전선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생사고락을 함께한 자신의 동료들을 두고 후방의 안전한 비행학교로 가는것을 기피하는 일선 전투조종사들의 전우애도 우수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한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반면에 연합국 공군의 경우에는 충원할 충분한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100회출격을 한 경우에는 일선 전투임무에서 제외된 후에 비행학교의 교관으로 자신의 학생들에게 자신이 유럽의 전장에서 100회 출격을 하며 습득한 모든 지식을 후배 조종사들에게 전수시킬 수 있었다. 1944년과 1945년의 미국 조종사들은 평균 연령이 20-21살에 불과했지만 경험이 풍부했다.)  


또 비행 학교에는 훈련병들에게 충분한 비행 훈련을 시킬 만한 연료조차도 없었다. 새 대원들은 불과 112시간의 훈련비행을 받은 뒤 실전부대로 보내졌다. 이것은 미군 훈련병들의 훈련 비행시간의 절반 이하였다.


갈란드의 보고서의 참된 의미는 분명했다. 즉 연합군이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을때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생각해 볼것) 독일 공군이 연합군을 격퇴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국 공군 만큼이나 갈란드를 더욱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갈란드의 직속상관 제국원수 헤르만 괴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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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니었냐 ? 어떻게 적진에서 우리가 다급하게 긴급구조 요청을 했을 때 마다 북 베트남 군의 대공 기관총과 로켓 (RPG) 세례를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달려 와 줄 수가 있었지 ?"

 

"너희가 우리를 불렀잖아 (BECAUSE YOU CALLED !)"

 

- 수 십년이 지난 후 재회 행사 (Reunion) 에서 다시 만난 이제는 둘 다 노인이 된 LRRP 대원과 헬기 조종사의 대화 내용


1. mutual respect (상호 존경)

 

 

 

 

 

 

베트남전에서 보병들의 상대해야 했던 것은 비단 북 베트남 군이나 베트콩과 같은 적군 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의 자연 환경 그 자체가 병사들의 목숨을 노리는 또 하나의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쏟아지는 비와 찌는 듯한 더위, 진흙탕, 정글 거머리와 각종 독충, 독사, 때로는 호랑이 (험준한 A SHAU 계곡에서 다수 서식. T T) 

 

더구나 각종 풍토병 (말라리아, 피부병)과 과도한 군장으로 인한 열사병까지 ...........

 

 

 

 

 

이런 보병들의 고충에 비하면 헬기 조종사들은 (헬기의 열린 창문과 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비행을 하고 일과가 끝나면 장교 클럽에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미지근한 물이나마 샤워를 하고 지붕이 있는 숙소에서 잠을 잘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에 있었고 자신들이 지원하는 보병들이나 정찰대원들의 고초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도움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거기다 임무 중 격추되어 정글속을 헤메 보기라도 한다면 이들 LRRP대원들에 대한 존경심은 높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하루만 정글 속에 있어도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이런 곳에서 5~10일 동안을 버티냐 정말 대단하다"

                                           - A-SHAU 계곡에서 헬기가 추락 된 후 하루 만에 구조된 헬기 조종사의 말

 

 

 

 

격추된 승무원들을 구하러 와주는 것도 결국은 LRRP들이 었으니 그들의 유대감은 각별할 수 밖에는 없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의 가족과 입대 전의 삶 그리고 제대 후의 꿈 등을 이야기하며 각별한 사이가 되어 가게 됩니다

 

 

 

 

2. LRRP TEAM LEADER : 막강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만 알려 달라, 어떻게 하라는 말은 하지 말고"

                                                     
                                                                  - 특수 부대의 불문율이자 고도의 자율성을 대변하는 말


일단 사단 본부에서 수행해야하는 임무가 하달되면 LRRP 중대장 (대개 1차 파병에서 보병 소대장으로 실전 경험을 갖고 있고 재파월된 고참 대위) 과 작전 부사관이 해당 임무를 수행할 팀을 선정하고 작전을 지원 할  헬기 중대 (LRRP 전담 헬기 조종사) 와 연락 후 세부계획 수립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TEAM LEADER는 팀을 대표하여 세부 계획을 마무리 짓고 자신들의 팀을 지원해 주는 ASSET 들 (포병지원 여부 및 공격 헬기 [일명 "GUNS"] 지원) 를 다시 확인 합니다.

 

그후 중대장 및 LRPP 조종사와 함께 미리 (PRE-FLIGHT) 해당 침투 지역 주변을 실제로 공중에서 확인한 후 헬기가 정찰팀을 침투시킬 지점 LZ (LANDING ZONE) 및 임무 완수 뒤 그들을 데리고 올 지점 (PICKUP ZONE)을 확정하며 비행 후 계획실행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병장을 환대하는 어느 중령의 이야기 

 

FSB (화력지원기지)를 운영하는 야전 포병 대대의 대대장인 중령 (일명 "언덕의 왕 KING OF THE HILL")이 "일개" 병장을 헬리 패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 합니다. 마치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한 채 LRRP 팀 리더를 FDC로 이끄는 중령.

 

 

 

 

 

 

FDC에 근무하는 휘하 장병들에게 인사를 시키고는 다음 임무에서 자신의 포병 대대가 타격할 목표 지점들을 조율하도록 화력지원반장과 팀 리더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대대장은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실제 사격을 하는 포반으로 그를 데려가서 포반장과 병사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LRRP들이 임무를 완수하게 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어서 자신과 부하들이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는 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중령. 

 

감격한 팀 리더 이번에는 답례로 포병들의 정확한 화력 지원을 LRRP들이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는 지를 그들에게 말해줍니다.

 

갑작스런 1인 FSB 투어를 마친 병장의 한 마디 : "I WAS TREATED LIKE A VIP AND I LOVED IT"   


LRRP 팀 리더의 절대적 권위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FIRST IN, LAST OUT"

 

LRRP 팀 6명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LRRP 팀 리더의 철칙은

 

위험한 LZ 에서 언제나 헬기를 박차고 나가는 첫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임무를 마친 뒤 모든 팀원들을 다 헬기에 태우고 현장에 마지막으로 남아 "누구도 남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제일 마지막으로 헬기에 올라야 할 의무가 있고 이 철칙을 지키지 않는 팀 리더는 그 날로 다른 부대로 전출되거나 팀원들에 의해 인격적 사망 선고를 받고 누구도 그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게 되어 유령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Remember, LRRP's Don't Leave LRRP's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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